날씨가 쌀쌀해지면 붕어빵 생각이 나더라.
2022년 12월, 다니던 회사의 경영난으로 희망퇴직을 하고 머리 좀 식힐겸 잠깐 쉬고있었다. 그 당시 운이 좋게 몇몇 대학 동기들이 나와 같은 처지에 있었고, 가끔 만나 게임이나 같이 하면서 지내고 있었다.
문득 길에서 붕어빵 하나를 사먹었는데, 너무 맛이 없었고, 내가 해도 이것 보단 낫겠다 생각될만큼 억울했다. 이런 불만은 붕어빵이나 한 번 팔아볼까?(시간도 많겠다) 라는 생각으로 붕어빵 장사를 시작하게 됐다.
이름은 붕진남녀
사실 나는 대학생 시절부터 축제 때마다 야간부스를 신청해 팥빙수, 닭꼬치, 연어, 육회 등등 그 시절 유행하던것들을 판매해 꽤나 많은 용돈을 챙겼었고, 그 때 같이 했던 친구들과의 추억도 너무 좋게 남아있다.
어릴적 메이플 스토리를 하더라도 사냥터에서 레벨을 올리는 대신에 자유시장에서 아이템을 사고 팔아 메소를 챙기며 보람을 느꼈을 때부터 장사란게 참 재미있는거구나 싶었다.
대학생 축제 부스의 가장 큰 장점은 내 친구들, 동아리 사람들이 주 고객이라는 점과 모든 고객들이 축제에 들떠있다는 점이었는데, 이는 곧 높은 매출로 연결되기 너무 쉬운 구조였고, 그냥 열심히만 하면 돈을 벌 수 있었다.
근데 밖에서 장사하면 좀 어렵지 않을까? 조금만 붕어빵이 맛이 없어도 뭔가 문제가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재밌겠으니 해봐야겠다.
뭐부터 시작해야하지
자, 이제 붕어빵을 실제로 팔아봐야겠다. 근데 뭐부터 해야하지? 중요한 문제부터 머릿속에서 리스트업 했다.
1. 자리 문제
시내에 있는 붕어빵 마차들을 다 찾아보며 어디에서 장사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 여쭤봤다.
붕어빵 장사는 구청에서 정식으로 허가를 받으려면 절차가 꽤나 복잡했고, 거쳐야 하는 교육도 굉장히 많았기에 대부분 붕어빵 장사하시는 분들은 허가를 받지 않고 한다고 한다. 어차피 겨울철 한 두 달 하기 때문인 것 같다.(좋은 업계관행은 아닌듯)
또한 좋은 상권에서 붕어빵을 팔고 있을 경우에, 권리금과 임대료를 내고 장사를 하는 분들에게는 민폐라고 생각이 들었기에
- 주변에 식당(특히 카페)이 많이 없는 곳
- 유동인구가 많은 곳
- 다른 시민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 곳
- 멤버중에 한 명의 집 근처(마차를 계속 관리해야하기 때문에)
을 찾아서 며칠을 헤매고 다녔다. 찾다보니 왜 항상 붕어빵 마차는 외진곳에서 전구 하나 켜놓고 장사를 하고 있는지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2. 장비 문제
크게 3가지 종류의 장비가 필요했다.
- 마차
- 빵틀
- 그 외 붕어빵을 만들기 위한 도구들
빵틀을 가스식으로 하냐 전기식으로 하냐에 대한 고민이 가장 많았다. 막연히 가스와 불의 조합은 좀 위험하지 않을까는 걱정이 있어서 전기 붕어빵을 하려고 시도했었지만 장소를 정하고 나니 주변에 전기를 끌어쓸 수 있는 곳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가스로 정하게 되었다.
붕어빵 마차를 대여해주는 업체는 그렇게 많지 않았고, 설령 대여가 된다고 해도 구매하는 것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110만원정도 소요됐던 것 같다.
그 외의 장비는 대부분 마차를 구매한 업체에서 서비스로 주었지만(주전자나 꼬챙이, 붕어빵 봉투 등), 빵틀을 청소하기 위한 솔이나 락앤락 통, 전구 같이 현실에 부딪혀보지 않으면 생각해보지도 못한 도구는 필요할 때마다 추가적으로 구입했다.
3. 마케팅 문제
차별화 전략도 필요하지 않을까. 일단 붕어빵이 맛있어야 했다. 애초에 맛있는 붕어빵을 만드는 게 붕진남녀의 창립이념이므로, 붕어빵 자체가 맛있는 집으로 소문이 났으면 했다.
그 외에도 초코붕어빵이나 피자붕어빵도 만들어서 프리미엄 붕어빵을 팔아보자는 전략도 있었다.
또 붕진남녀 멤버들이 대학시절 춤 동아리를 같이 했던 친구들이기 때문에 2만원 이상 구매한 고객에게 방탄소년단 춤을 춰주면 재밌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실제로 하기도 했다.
지인들이 와서 대량으로 구매를 하고 갈 때만 볼 수 있는, 나름 이스터에그같은 이벤트가 있으면 좋지 않을까.
4. 시간표 문제
다들 구직 활동도 하고 있었고, 일요일마다 교회를 가는 친구들도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고정적으로 시간표를 정하기에는 토요일마다 붕어를 판다는 건 조금 속상하기 때문에, 매주 개인의 일정을 고려해서 붕어 당번을 정해야만 했다.
일단 고!
일단 고!는 붕진남녀를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했던 말인 것 같다. 노점상이라는 특성상 많은 부분이 불확실한 상태에서 출발할 수 밖에 없었고, 주변에 마땅히 물어볼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계획이 해결해 주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대안을 만들어 놓고 일단 진행시키는 수 밖에.
찜 해놓은 골목으로 업체를 불러 마차를 받고, 업체 직원이 어떻게 하면 붕어빵을 잘 굽는지 1시간 정도 대략적으로 알려준다.
붕어빵을 잘 굽는건 생각보다 어려웠다. 빵틀이 원형이기 때문에 하나가 밀리기 시작하면 뒤에 빵도 계속 타게되고, 매번 일정한 반죽량과 속재료를 동일한 타이밍에 넣어 주어야하며 낮-밤 시간대 별로 불조절도 살짝 다르게 해줘야했다.
반죽이 속재료를 정확히 감싸지 않으면 속재료가 터져버렸고, 그렇다고 반죽을 많이 넣게 되면 붕어빵이 맛이 없었다. 그래서 첫 날은 거의 한 시간 가까이 한 개도 성공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도 일단 시작했습니다!
팥도 정말 많이 넣었습니다
남는게 없겠다 라는 소리를 정말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장사란 쉽지 않더군요
장사를 시작하고 일주일만에 붙은 경고장이다. 공원에서는 취사가 금지되어있으니 다른 장소로 옮기라는 내용이었다. 다음 날 서초구청 직원과 얘기를 해보니, 하지 말라는 느낌보다는 공원 밖에서 해라는 뜻으로 근처로 옮길 것을 권장했다.
후에는 앞에 있던 노인정 할머님들이 직접 동사무소를 찾아가서 붕진남녀 청년들 2월말까지만 붕어빵 팔게 허락해달라고 대신 (간이)허가를 받아 주셨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봐도 너무 감사드리는 일이었다.
이 밖에 날씨도 문제였다.
서울의 겨울은 정말 추웠고 최저 영하 17도까지 떨어지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에는 잠깐이라도 재료들을 밖에다가 방치할 경우에 돌덩이처럼 얼어버리곤 했다.
사실 이런 문제를 예상했어서, 아이스박스를 구매했었는데 마차를 이리저리 옮기면서 분실하게 되었고, 하나 더 구매하자니 아이스박스 비용이 꽤나 나가기도 했고, 이제 슬슬 날도 풀리는듯해서 그냥 없이 잘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하다가 뒷통수를 맞은 것이었다.
덕분에 이 날은 평소보다 1시간정도 장사를 덜 해야 했으며, 얼어버린 재료 때문에 일부 손님들에게 붕어를 판매하지 못해 불편함을 겪게해 참 죄송한 날이었다.
사실 가장 힘들었던건 뒷정리였다. 빵틀 청소부터 마차 정리까지.
기억에 남는 손님들
- 노인정에 계시는 할머님들이 맨날 20개씩 사드셨다. 진정한 VIP 손님들이었다.
- 아침에 15,000보 이상 운동삼아 걷고, 매일 붕어빵을 드시러 오시는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하루는 공원에 앉아계시는 할머니를 보시더니 “내가 이거 사가서 같이 먹자고 하면 같이 먹으려나?” 라며 붕어빵을 사가는 모습이 참 소년같았다.
- 남자 손님이 오셨는데, 아내가 팥붕어빵 2개 사가지고 온거를 먹고 감질맛나서 못 참겠다며 10개 더 주문하러 왔다고 하셨다. 정말 뿌듯했다.
- 아버지가 한 번 방문하셨었다. 아버지는 평소에 내가 하는 모든 일들에 대해서 비판적이고 분석적인 시각을 가지고 계셨지만, 붕어빵을 드시고는 “정말 맛있다" 라는 칭찬만 남기고 자리를 떠나셨다.
- 고등학교 동창들 4명이 방문했었는데 다들 붕어빵 한 개씩 먹더니 “2만원 낼테니 먹고싶은만큼 먹게 해주면 안됨?” 이라고 하더라. 2만원이면 40개인데 마음껏 먹어…
- 고등학교 친구가 멀리서 붕어를 먹으러 왔었는데, 미리 와있던 초등학생 손님이랑 2시간넘게 수다를 떨면서 장사를 같이했었던 적도 있었다. 재료 손질법부터 마케팅까지 다양한 방면으로 조언해주던 초딩 손님이었다.
- 붕어빵 마차에 항상 노래를 틀어놨었는데, 초등학교 2학년정도 되보이는 여자애 둘이서 붕어빵 먹다가 아이브의 After Like가 나오더니 따라 추더라. 붕어빵 하나씩 더 줬다.
그래서 돈은 많이 벌었나
붕어빵을 사가는 분들 중 많은 분들이 젊은 사람들이 한다면서 그래서 돈은 많이 버셨나요? 라고 질문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붕진남녀는 마차 오픈부터 마감까지 대부분 손님이 꽉차게 줄 서서 기다릴만큼 인기가 많았다. 붕어를 한가득 쌓아놓아도 일명 타노스 손님들이 종종 나타나 붕어의 절반을 쓸어가셨기 때문에 계속 붕어를 구어야만 했다.
그래도 돈은 못 벌었다. 1,000원에 2개라는 가격이 요즘같은 물가로는 이윤 자체도 많이 안남았고, 매번 둘이서 장사를 했기 때문에 한 사람당 수익의 절반밖에 못 가져가는 구조였다.
또한 서비스도 많이 줬고(특히 어린 손님들에게), 붕어빵 자체에 속재료도 많이 들어갔기 때문에...맛있는 붕어빵을 저렴하게 팔았으니 장사는 잘됐지만 수익은 많을 수 없던게 당연한 결과이지 싶다.
돈은 못벌었어도 개발자답게 어느 요일에 가장 붕어가 많이 팔리는지, 어떻게 만들어야 평균 이익이 가장 많이 나는지 등도 분석을 해가면서 장사를 했었다. 그냥 재미로.
하지만 뜻 깊었다.
가장 크게 배웠던 것이 두 가지 있는데 첫 번째는 일이 시작되면, 상황은 바뀐다 라는 것이다. 실행력의 힘이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은 늘 걱정이 앞서고 자연스럽게 안되는 이유를 찾기 마련이다.
초기에 장소를 물색 할 때, 경로당에 있는 할머님들께 전기를 써서 붕어빵을 좀 팔아도 괜찮겠냐고 허락을 구했지만, 대차게 거절 당했다. 그러나 실제로 붕어빵을 팔고 있는 모습을 보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리의 장사를 도와주고 싶어하셨다.
누군가가 말로만 이런거를 할거다, 이런 계획이 있다 라는 거는 크게 와닿지 않는다. 그게 설령 그 사람이 그 일을 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과 힘이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실현한 모습을 보여줬을 때는 훨씬 더 설득력 있는 얘기를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느꼈다.
두 번째는 끌어내림의 법칙이다. 디테일의 힘이다. 어떻게 보면 목표설정의 중요성일 수도 있겠는데, 애초에 목표가 맛있는 붕어빵을 만들자였기 때문에 돈을 벌 수가 없는 의사결정들이 계속 발생했다.
이는 재정적으로 디테일하지 못한 프로젝트 운영을 초래했고, 실수에 관대해지는 기조가 되었던 것 같다. 장사의 기본인 이윤창출을 하지 못했으니 멋지게 실패한 프로젝트가 되버린 것이다.
어떻게 하면 더 맛있는 붕어빵을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했던 것은 손님들에게 좋은 추억을 드릴 수 있었던 것 같아 참 좋았지만 체계적이지 못한 운영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2022년 12월 28일부터 60일가까이 진행됐던 붕진남녀 5인.
비록 많은 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같이 붕어팔며 고생하고 재밌었던 성우, 은빈, 은제, 창렬이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포스팅을 마칩니다.